태그 : 다윈

소심한, 아니, 신중한 다윈씨


지금으로부터 딱 200년 전에 유명하디 유명한 다윈이 태어났고, 딱 150년 전에 진짜 유명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가 세상에 나왔다.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군도를 돌아 보면서, 비슷한 듯 다른 수많은 새들이 무려 같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진화론이 나왔다. 그러나 비글호 항해와 <종의 기원>의 출판에는 꽤 긴 시간의 장벽이 있는데 역사가들은 그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의사집안에서 태어난 다윈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의대에 보내졌는데, 당시에는 마취 기술이 없던 시절이라, 고통 속에서 수술받는 환자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또, 비참한 생활을 하는 노예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신학 교육을 받은 다윈은 피츠로이 선장을 따라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로 여행을 떠난다. 5년 간의 항해에서 본 것들을 기록하고 수집품을 온갖 과학자들에 보냈는데, 이 때에 요상한 이론에 꽂히게 된다. 같은 종임에도 섬마다 전혀 다른 형태를 띈 새 (핀치)들은 대체 왜 저러한 걸까? 신께서 각 섬마다 다른 새를 창조하신 걸까? 왠지 그런 일을 하기엔 너무 귀찮을 거 같은데... 비록 비글호 항해에서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긴 했지만, 사실 다윈의 아이디어는 아직 체계화 하기에는 너무 미미했다.

항해 후, 다윈은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갔다. 게다가 종의 변형론은 창조주 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무시무시한 짓이 아닌가. 정말 신중해야 했다. 자신의 생각을 섣불리 밝혔다가는 유물론자로 오해 받기 쉽상이었다. 더불어 탄탄하지 못한 논리로 주장을 내세웠다가는 오히려 사람들의 반발을 사서 진화론이 자칫 신비주의에 파묻힐 수 있었다.

놀랍게도,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지형은 급변하지 않고 오랜 시간 서서히 변한다는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와 '멜서스'의 <인구론>이었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식량 부족 사태를 겪고 인구 수가 조정이 될 거라는 맥락의 글에서 '생존 경쟁' 개념을 생각하게 되었다. 기린을 예를 들어 생각해 보면, 기린의 개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어느 순간 식량이 부족한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때, 유난히 목이 긴 기린이 있다면, 좀 더 높이 위치한 나뭇잎도 따먹을 수 있기에 생존에 유리할 것이고 살아남아 후손을 이어갈 수 있다. 환경의 영향에 따라서 특정 개체가 선택적으로 살아 남는다는 '자연 선택'의 토대가 여기에서 기인한다. 한편, 다윈은 '자연 선택' 이전에 '인공 선택'의 개념을 먼저 떠올렸는데, 인간이 말을 키우는데, 만약 경마를 위해 말을 키운다면 분명히 건강하고 잘 달리는 말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종마를 얻기 위해 품종 좋은 경주마들끼리 교배를 통해 후손을 얻을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특정 성질을 가진 개체가 인공적으로 선택되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같은 종이었더라도 지역적 특성(환경)에 따라 자연적으로 선택된 개체들이 대를 이어 나가다 보니 섬마다 전혀 다른 생김새의 새들이 나타나는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얼핏 보면 다윈의 진화론은 다윈의 비글호 항해 이후 짧은 시기에 나왔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 점은 어느 정도에서는 맞았으나, 다윈은 좀 더 신중하기를 원했고 몇번이고 확인해 보고 싶어했다. 비교적 급진적인 이론이 사람들에게 좀 더 잘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 이론적 보완과 함께 여러가지 경험적 관찰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주 두꺼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다윈의 이러한 스타일은 따개비 연구에서도 보여지는데, 스스로도 짧은 시간에 끝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따개비 연구는 무려 8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시기에 어렸던 다윈의 아들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아버지를 보고 놀라 물었던 말이 "너희 아버지 따개비는 어디 있니?"였다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연구에 심취하는 지 알 수 있다.

두꺼운 책을 쓰던 다윈은 갑자기 요약본으로 전환하여 <종의 기원>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 '월리스'의 진화론논문이다. 비교적 젊고 혈기 왕성했으나 (다윈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 과학계에서는 학자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월리스는 다윈과 거의 비슷한 진화론을 독자적으로 수립하였으며 자연 선택의 개념을 그 근거로 두었다 (비록 그가 자연선택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진 않았으나 내용이 다윈과 매우 흡사했다) 아무리 신중한 다윈씨라도,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이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를 상황에서 고민에 고민을 하던 다윈은 주변 동료들의 제안에 따라 '마지못해' 월리스와 동시 발표를 하게 된다. 과학에서 동시 발견은 흔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윈과 월리스의 동시 발견(?)은 비교적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는데, 월리스는 자신의 이론을 대학자 다윈(비록 월리스 자신은 다윈보다 라이엘을 더 높게 보았지만)이 인정한 것에 매우 기뻐했고, 다윈은 공동 발표나마 젊은 학자를 밟지 않고 자신과 함께 발표하게 되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물론 당시 학계에서 크게 인정 받는 다윈이었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다윈 혼자 단독으로 발표하여 공을 모두 가져갈 수도 있었으나, 다윈은 마음이 여린 '신사'였기에 그러한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연구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다가(정말로 다짐한 것인지는 미심쩍지만) 동료인 라이엘과 후커가 공동 발표를 권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들에 동의했다.

다윈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고맙게도(?) 다윈은 꽤나 많은 편지를 작성했다. 덕분에 역사학자들은 다윈에 대한 꼼꼼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다윈은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학계에 직접 나서거나 다른 과학자들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는데, 작은 논쟁이라도 벌어지면 머리 속이 빙빙 돌고 구토가 날 것만 같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언쟁을 싫어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 달라고 갖가지 부탁을 할 정도였던 걸로 보아서는 내심 얼굴은 두꺼운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심포지움에서 장대익 교수님은 다윈이 지금 세대를 살아간다면 진정한 인터넷 인간이 아닐까 생각하신다는데,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언제나 자신의 건강에 대해 걱정했던 다윈은 (그가 자주 아팠던 건 사실인 듯하나, 그러한 이야기를 일기와 편지에 계속 표현하고 있으니 엄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중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의 성과를 가로채는 것을 매우 싫어한 신사였다.

혈액형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굳이 보자면, 다윈은 A형이 아니었을까 싶다.


참고문헌
1. 데이비드 쾀맨 저, 이한음 역, 신중한 다윈씨 (승산, 2008)
2. 피터 보울러, 이완 모러스 저, 김봉국, 홍성욱 역, 현대과학의 풍경 (궁리, 2008), 6장 다윈혁명.
3. M. Ruse, R.J. Richards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Origin of Species (Cambridge, 2009), ch.1.


* 사진 출처: http://www.sciencehumor.org/2008/photoshop-darwin-charles/ (구글 이미지 검색 "darwin")


by jewel | 2009/10/25 20:51 | 살롱 | 트랙백 | 덧글(4)

다윈진화론과 인간-과학-철학

7월 2~3일 이틀 간 진행된 다윈 진화론 관련 연합학술대회.
한국과학철학회, 대한의사학회, 한국분석철학회, 서양근대철학회, 한국과학기술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동물분류학회, 한국생명윤리학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의철학회, 국립과천과학관. 무려 11개 단체가 연합하여 열린 대규모학회로 정말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다윈 그 이후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올 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며 [종의 기원] 공식 발표 150주년이라 해외에서는 진화론 관련 학회가 굉장히 많이 벌어지고 있고, 다윈 진화론 과격파의 대표스타 '리처드 도킨슨'도 미국을 돌며 강연을 벌이고 있다.

다윈 이전부터 진화론에 관련된 이야기는 있었으나, 다윈 이후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공식적으로 신의 창조론을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데 가장 큰 문제는 진화론은 과학인데 반해 창조론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 둘의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이번 학회 덕분에 다윈과 진화론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진화론이 우리에 미친 많은 영향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모든 발표를 다 듣고 싶었는데 세 가지 세션이 한꺼번에 진행되어 선택하여 들어야만 했다는 것. 그렇다고 학회를 일주일 동안 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최근 학업도 이쪽 (진화는 아니고 과학사회학)으로 전향한 마당에 관련 도서를 좀 열심히 읽었는데 책의 저자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점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하하. 가수를 만난 팬심과 비슷하달까? 사실 많은 분들이 과정 교수님이거나 선배님들이시긴 하지만... ^^;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점은 후천성진화였는데 이는 다윈의 이론이 아니고 라마르크설이었던 것. 사람들이 흔히 진화론을 이야기 하면서 '기린의 목이 긴 것은 높이 있는 나뭇잎을 먹기 위해서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라고 말을 하지만 이는 라마르크적인 진화론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표현형질이(체세포) 변했다고 해서 생식세포의 유전형질이 변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인데,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생식세포의 유전형질이 중요하기에 그렇다.
생명체는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변이를 일으키고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는 계속해서 일어나는데 마침 자연 상태가 변하거나 혹은 변이된 종이 자연 상태에 더 잘 적응하거나 등의 우연적 원인에 의해 그들이 살아남고 (자연선택설) 그것이 이어지며 진화가 이어진다는 것이 다윈 진화론의 요지이다. 이 때 자연선택은 어떠한 목적성을 가지지 않으며 순수히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는 성질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점(목적성이 없다는 점) 때문에 종교계와 지속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다윈이 대단한 점은 [종의 기원]을 집필할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학에 대해 제대로 된 증거가 없었다는 것. 흔히들 멘델의 유전법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멘델도 '유전자'의 존재를 알고 이야기 했던 것은 아니며 순수히 완두콩의 표현형질만의 관찰에 의해 어떠한 유전 법칙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앞 서 이야기 했듯이 유전에서 표현형질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로의 전달은 표현형질보다는 유전형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더불어 멘델이 이러한 이론을 주장하였을 때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멘델은 수도원의 신학자였기(비전문과학자) 때문이다. 물론 다윈도 표현형질로 연구를 진행했긴 하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들을 살펴보며 표현형질로 비교적 정확한 진화론을 도출해 냈으니 여기서 그의 위대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윈 이후, 유전학이 함께 발달하면서 진화론을 유전자 단위에서 설명하려는 노력도 많았고 이에 따라 생물 계통도 조사도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에 관련된 연구는 진행되었으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표현형질에 의거한 분류였다) 이러한 연구는 계속되어 사람들은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의 DNA까지 조사하게 되었다.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 내에는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가 존재한다. 그런데 세포 핵 내에 해당 생명체의 유전형질을 기억하는 유전자(DNA)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토콘드리아' 자체적으로도 유전자(DNA)를 가지고 있다. 물론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가 생식에 관여하지 않으며 다음 세대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다음 세대를 결정짓는 것은 세포 핵의 유전자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모계 유전이 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표현되는 유전형질이 아니라 이들은 단순히 미토콘드리아 내에서만 위치한다) 이러한 점에서 착안하여 모든 생물체의 미토콘드리아 유전다를 따라가다 보면 태초의 여성, 즉 '이브'의 유전자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생물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조사도 수행되었다. 그 결과는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의 여성이었다는 결론이었는데 이는 유전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계통도 조사를 통해 나온 설과도 유사하다.

진화가 또 다른 의의를 갖는 것은 바로 생물의 다양성이다. 유전자는 끊임없이 변이를 시도한다. 흔히들 돌연변이는 좋지 않은 것, 이상한 것이라는 인상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나 돌연변이는 사실 자연계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작용이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진화에서 돌연변이는 연속적이지 않으며 일종의 끊어진 밴드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더불어 이것이 바로 양자역학과 맞물려 있는 생명의 사실이라고 이야기한다. (양자역학의 기본이 바로 연속성의 부정이며 모든 것은 양자화-끊어져-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진화를 통해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가 바로 생명 다양성인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할 여지를 남겨두자는것이다. 자연은 어떻게든 생명체를 남겨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 때 어떠한 기준으로 종을 선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변화에 적응하는 종을 살려두는 것이고, 이를 위해 자연은 진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까지가 이틀 간 학회를 듣고 얻은 진화론의 개괄적인 입문 과정 :)
이번 학회는 "After Darwin", 즉 다윈의 영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것에도 의의가 있지만, 더불어서 다양한 학문 간의 융합 혹은 통섭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이러한 '통섭'의 자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대중을 위한 강연으로 (근데 학회에 대중이 있었던가!), "최재천 교수님과 장대익 교수님의 다윈에 관한 대화"가 있었는데, 국내 최고의 동물행동학자와 진화생물학자의 대화 형식의 세미나는 새로운 시도라는 면에서, 그리고 다윈에 대한 두 석학의 논평이라는 점에서 꽤나 흥미로웠다. 이런 식의 강연도 많이 진행되면 대중이 과학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by jewel | 2009/07/03 23:54 | └ speak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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