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2월 09일
그녀는 어떻게 그걸 다 해낼까?

아무리 캐리브래드쇼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사라 제시카 파커가 주연이라지만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이하 하이힐)>라는 제목은 좀 너무했다. 왜냐하면 이 제목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뉴욕의 캐리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캐리가 결혼하고 애를 낳고서도 일을 한다면 할 얘기가 그려져 있지는 않을까? 혹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결혼후 버전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하이힐>의 그녀는 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 이름이 뭐더라? 아, 케이트이다. 만약 이게 우리나라 버전으로 나왔다면 또 케이트 보다는 에밀리 엄마로 불렸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에 살짝 훑었던 평들은 그랬다. 결혼 후 캐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며, 혹은 <섹스앤더시티(이하 SATC)>의 아줌마 버전이라며... 그러나 앞서 말했지만 내 평은 이렇다. 그녀는 결코 캐리가 아니다.
<하이힐>의 케이트가 사랑이 넘치는 부분이 어쩌면 캐리를 연상시킬 수도 있지만, 글쎄다. <SATC>를 몇번이고 봤던(SATC 잉여다;) 내가 파악한 캐리는 아무리 결혼했고,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도, 절대 옷에 밀가루 반죽을 묻힐 여자가 아니다. 게다가 아이 생일 파티를 직접 꾸밀 여자도 아니다. 아마도 사만다를 불러서 성인식과 비슷한 느낌의 파티를 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있다가 일 때문에 바로 비행기타고 뉴욕을 갈 여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케이트는 다소 비현실적일정도로 아이들에 헌신한다. 그렇게 바쁘면 아이 파티 정도는 이벤트 업체를 불러도 되잖아. 대체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그나저나 케이트, 어머 저건 한국의 어머니상 아니니?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도 저런 어머니를 찾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케이트는 일도 사랑하지만 가족도 너무 사랑하는 거다. 우리의(?) 문제 바로 "일과 thㅏ랑" 혹은 "thㅏ랑과 일"의 문제에 케이트가 위치한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심지어는 시어머니, 당신 한국 출신이세요???

케이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직장의 모습은 매우 재밌다. 그리고 많은 부분 공감이 간다. 특히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서 말할 때, 턱이 빠질 정도로 고개를 끄덕여댔다. 물론 여성에 대한 차별만 있는 건 아니다. 여성이라 힘든 점과 함께 여성이기 때문에 이로운 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소 불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잭과 케이트의 관계가 그런 것이 아닐까? 요즘 "오피스 와이프"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던데, 본 영화에서는 반대로 나타난다. 잭은 케이트의 "오피스 허즈번드"랄까. 잭이 케이트와 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회장님 앞에서 케이트의 노고를 분명히 짚어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즉, 남/녀 관계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 반대로 완전히 무시당할 수도 있었기에 뭐랄까 "여성"이라는 점은 직장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이런 재미있는 직장 여성의 모습을 더 그려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뭔가 재밌는 얘기를 시작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흐려지고 케이트의 해피라이프가 보인다. 아마도 이 때문에 케이트의 고충이 충분히 공감가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짚어야 할 것은, 30대 미혼 여성의 커리어라이프가 본 영화의 초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케이트는 커리어에서 성공한 골드미스가 아니라 "워킹맘"이다. 게다가 많은 시간을 일에 쏟아야 하는 궁극의 직업, 애널리스트가 그녀가 사랑해마지 않는 일인 것이다. 어쩌면 내가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가 "가정 딸린" 일하는 여성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케이트는 "일과 thㅏ랑"에서 결국은 사랑(가정)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이렇게 미화한다. "난 가정이 더 중요해요. 하지만 내 일도 사랑해요. 지금 이 일을 하는 나도, 가족과 함께 있는 나도 모두 진짜 나예요. 가족을 선택했다고 해서 나를 해고해도 좋아요. 하지만 결코 내가 먼저 포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뭐, 대략 이런 얘기였다. 오..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 좋아... 정말?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일과 사랑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 내가 보기에는 결국 그녀는 사랑을 선택한거다. 겉으로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에 대한 선택을 남에게 (보스에게? 혹은 시장에?) 맡겨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그녀를 남편도 아이들도 환영한다.
아... 결국 일하는 엄마는 이런 결론인걸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하이힐>은 <SATC>와 너무 다르다.
<SATC>에서 캐리는 감정적이고 "사랑"을 선택할 여성이지만 그보다 먼저 앞서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캐리뿐 아니라 <SATC>의 네 친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여성들이다. 사실 제작된지 다소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대사회(혹은 번잡한 도시)에서 독립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그린 <SATC>는 (적어도 내게) 신선했고, 고민을 공유할 수 있었고, 그녀들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 비해 <하이힐>은 너무나도 진부하다. 워킹맘의 고민을 표현하고 있지만 여전히 구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과 사랑을 이분하고 있다. 뭔가 현실과 타협한 것 같아 아쉽다.

* 여담. 개인적으로 <SATC>에서 사실 캐리가 젤 별로인 캐릭터긴 하다(뭔가 너무 잉여 돋고, 남자 하나로 인생역전하는 캐릭터; 뭐 질투하는 걸지도...). 그러나 반대로 <하이힐>의 케이트는 사실 캐리보다 더 마음이 가는 캐릭터다. 뭐든 열심히 해보려는 그녀가 맘에 든다. 암튼 두 캐릭터는 내가 보기에 너무 다르다.
** 피어스브로스넌씨 늙어서도 멋지긴한데 사실 젊었을 때 얼굴이 많이 안보여요! 아저씬 내게 여전히 "레밍턴스틸"이예요~ :)
*** 아무튼 성공한 여성은 일단 결혼하고 애가 있어야 하는거군-_-
# by | 2012/02/09 20:52 | └ watch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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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뭔가 좀 아쉬움이 있더라고요. 슈퍼우먼 이야기이지만 뭔가 일과 사랑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선택이 강요되는 것 같아서요. ^^
잇어도 고작해야 삐에로나 마술사를 부르는 정도...
한국은 정말 알아서 다해주는 멋진 서비스의 나라죠...
근데 영화 속에서 케이트랑 비교되는 운동맘-_-(이름이 기억이..)이 나왔는데, 이 여자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운동하는 그런 여자였는데, 중간에 그 여자 인터뷰 형식으로 나온 내용이, 자기는 아이 생일에 이벤트 업체를 불러서 다 했다고 했거든요. 돈을 얹어주면 그 업체에서 시부모님께는 잘못된 주소를 알려주어 아이 생일에 나타나지 못하게도 할 수 있다며... ^^;
제가 케이트에게 이벤트업체를 권했던 것은, 그녀가 금융 애널리스트이기 때문에 돈은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 그녀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너무 사랑해서(?) 직접 파티를 열어주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들이 처음으로 머리자르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우는 여자거든요. 아이들에 관해서는 타협이 안되는 부분이 엄마의 사랑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없는 제가 보기에는 좀 고생을 사서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