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description)의 문제 혹은 재현(representation)의 문제

논문에서만 읽던 기술(description) 혹은 재현(representation)의 문제가 블로그를 쓰다보니 새삼 와닿는다.
글로 배웠어요에서 경험으로 느끼고 있어요~ 랄까?

지난 학기에 실험실 참여관찰 연구를 진행하는 바람에
정식으로 수강한 건 한 과목이었는데, 다른 수업에 청강을 했다.
그러나 로드가 너무 많이 걸려서 결국 두 시간 밖에 듣지 못했다.
그 때 내가 발제했던 논문이 쿠레쉬의 "호튼톳 비너스"였다.
당시 논문을 다 읽고 든 생각은,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였는데...
사실 아직까지 어째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최대한 맥락을 반영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정도?
그리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

논문의 내용이 뭐였냐면,
1995년 "Bring back the Hottentot Venus"라는 캠페인이 열렸는데, 이는 아프리카 여성 및 흑인 여성들의 인권신장을 목표로 한 운동의 일환으로 식민지 흑인 여성의 대표라고 볼 수 있는 호튼톳 비너스를 내세워서 과거에 제국이 식민지에 행했던 행위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남아공의 대통령이던 넬슨 만델라는 이를 내세워서 프랑스 정부와 무슨 협상을 하려 했던 것 같다. 호튼톳 비너스는 사실 그녀의 이름이 아니라 제국에서 붙인 별명으로, 그녀의 이름은 '사라'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제국으로 넘어오면서 붙여진 이름인데 원래 그녀가 있던 코이산 부족 내에서의 본명이 무엇인지는 문헌에 남아 있지 않다. 아프리카로 건너간 유럽인들은 처음보는 부족의 특이한 모습에 놀랐는데, 가슴과 엉덩이가 심하게 큰 그 부족 여성들을 보고 그들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 난 것을 보고 인간으로 분류했다. 새로운 인류는 유럽인들에게 신기한 '것'이었는데, 자연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탐구 대상이면서 인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대상이기도 했고, 혹은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처음 그녀를 데려간 것은 영국의 무슨 서커스단. 당시 유럽은 새로운 세계에서 수집한 신기한 '것들'이 유행하였는데 (박물학이 이 즈음 탄생했다), 수염이 나는 여성, 털이 많은 소년, 키가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작은 사람들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구경거리였고 이들을 모아 서커스단을 만들어 돌아다녔던 것. 영국에서 몇 년의 생활을 한 후에 그녀는 프랑스로 이동되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박물학자 (혹은 생물학자) 조르주 큐비에는 그녀를 탐구의 대상으로써 일정 기간 관찰하고 연구했다. 물론 그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인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었다. 그녀가 프랑스로 옮겨진 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죽었는데, 죽은 후에도 그녀의 신체는 해부되고 방부처리 되어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앞서 말한 협상의 내용 중에는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그녀의 시체를 철거하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묻고자 하는 것은 본 이야기 속에서 '사라'가 얼마나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가 하는 것이다. 95년의 캠페인은 언뜻 보기에는 '사라'를 인간적으로 대우해달라는 내용을 포함한 흑인인권 운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사라는 그녀의 본래 이름이나 본래의 모습이 아닌, 영국인과 프랑스인이 즐겨 불렀던 '호튼톳 비너스(번역하자면 원시인 여자)'로 재현되었다. 그리고 실제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여전히 관심 받지 못했으며, 캠페인 속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착취당하는 아프리카 식민지 여성이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딱부러진 해결책을 내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 서술해야 그녀, 그, 혹은 그것의 목소리를 반영한 서술이 되며, 그들을 제대로 이해한 서술이 될까? 어떠한 서술이 그들을 정당하게 재현해줄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은 많은 인류학자들, 조금 범위를 높이면 질적방법론자들, 혹은 인문학자들의 고민이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과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의 수량화라는 방법론(혹은 양적 방법론)을 통해서 묻혀버리는 수많은 맥락들을 어떻게 드러내줄 수 있을까?
'이지아 동정론'을 보다가 문득 호튼톳 비너스가 생각이 났다.


* Qureshi, Sadiah (2004), "Displaying Sara Baartman, the 'Hottentot Venus'", History of Science, 42: 233-257.


by jewel | 2011/04/24 15:19 | 원생의 일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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