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안개에 젖다

만추 봤숑!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군입대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현빈은 마지막 드라마를 히트시키더니, 그대로 영화까지 줄줄이 잇고 있다. 군대를 간 후에도 그의 작품들과 그 여운은 계속될 것 같다. 난 현빈의 드라마들을 꽤 좋아하는데, 처음 그를 보고 반했던 <아일랜드>도 그렇고 그를 스타로 올려준 <내 이름은 김삼순>도 참 좋아했다. 그가 지금의 연인을 만나게 된 <그들이 사는 세상>은 보지 않았지만, 최근 화제가 된 <시크릿 가든>도 그를 부각시키기엔 충분한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 그가 맡았던 캐릭터들은 한편으로는 곧고 바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 느끼한 매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영화 <만추>에서도 이어진다.

영화의 배경인 시애틀은 사실 꽤나 잔잔한 동네다. 일년 중 3/4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동네. 혹은 자욱한 안개가 깊게 드리운 동네. 한편으로 답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먹먹하고 단절된 느낌을 주는 배경. 그리고 그에 걸맞는 주인공 둘이 있다. 아니,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애나'일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애나'가 있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애나에 대해 점점 많은 것들을 알아가게 된다. 반면, '훈'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것들이 알려지지 않는데, 그들이 함께 지낸 3일동안 애나가 훈에 대해 알게된 정도가 우리가 훈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일 것이다. 즉, 영화는 애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애나는 인생이 꼬여도 이렇게 꼬였나 싶은 캐릭터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녀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화날만도 한데, 화를 내지도 않고, 슬플만도 한 데 울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훈은 그런 그녀에게서 미소를 보았다. 절대 웃지 않았다고 하는 애나와 자신을 향해 웃었다고 우기는 훈. 훈은 거짓말도 꽤나 능숙하게 하는 전형적인 '선수'이지만 애나에게는 그런 점들이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 애나의 첫사랑인 왕징이 훈에게 적대감을 보일 때에도 훈은 그 특유의 (능글맞은-_-) 표정으로 잠시라도 즐겁게 놀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니냐고 말을 하며 그의 신경을 긁어댄다. 일반적으로 훈의 그런 생각보다는 왕징의 그녀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옳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간에 일어난 사건의 맥락에서는 오히려 끊임 없이 애나를 생각하는 왕징보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겠다고 하는 훈의 가벼울 수도 있는 마음이 애나에게 더 필요한 사랑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애나는 끊임없이 타자화된다. 미국 땅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 미국인 간수가 가득한 감옥의 죄수,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 첫사랑에게 배신당했지만 연을 뗄 수 없는 그녀. 그녀 뿐만 아니라 훈도 이방인. 그리고 훈 주변의 그 여자들도 모두 사회에 쉬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더욱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이건 단순히 언어가 통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다. 애나는 훈의 한국어를, 훈은 애나의 중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시장에서 애나와 훈은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하지 않았나. 옥자의 남편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그들도 장미빛 미래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그들은 결국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최초로 낯선 곳에서 타자가 아닌 주체로 살게 될 수 있었던 그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영화 내내 자욱하게 드리운 시애틀의 안개가 답답하게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만남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혹 그들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좋다. 애나는 안개처럼 스며든 훈을 통해서 그녀의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었으니까.

너무 조용해서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핑크빛 엔딩도 없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마음 한켠에 자리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마지막 표정이 처음과 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영화의 마지막에 나왔던 "Keystone Cafe"를 구글링해보았다.
자욱한 안개 속에 호수가에 자리한 카페가 꽤나 운치 있어 보였기 때문.
근데... 시애틀에서 프레즈노(캘리포니아)로 가는 버스가 저길 대체 왜 지나가냐!
시애틀보다 훨씬 북쪽에, 거의 캐나다 국경지대에 있넹.
(뭐, 따지는 건 아니고;; ㅋㅋ)

** 사진은 모두 cine21에 있는 영화 스틸컷에서 빌려왔습니다.


by jewel | 2011/02/21 00:06 | └ watch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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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뮤즈들의 쇼케이스 at 2011/02/21 15:57

제목 : 그들의 시애틀과 나의 시애틀
오늘도 현빈의 공항 패션에 관한 기사가 났다. 요즘 가장 많이 거론되는 연예인이 바로 그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그의 인기에 편승해서 블로그 인기 좀 올려보자고 그의 영화 를 이용하려 한다. (지난 번에 얘기했던 대로 말이지) 그러나 정작 그의 영화는 그의 인기만큼은 아닌가보다. 그래도 난 참 괜찮게 봤는데 말이지. 그렇다고 여기에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이미 다른 곳에서 한 번 했으니 링크를 건다. 본 포스팅은.....more

Commented by 스누피 at 2011/02/24 23:25
연화야 안녕~ 잘 지내니? 나 지성.
무려 백만 이십일년 만이구나 ㅎㅎ
난 재작년 말부터 본사로 발령나서 서울에 있어. 집은 일산 쪽이고.
근데 올해 안에 울산으로 돌아가려고 지원해 놓았어.
언제 시간 나면 밥이나 함 먹자.
Commented by jewel at 2011/02/27 11:17
하이하이~ 아, 진짜 오랜만이야 >ㅁ<
본사 발령이면 좋지 않아? 왜 다시 울산으로 가?
사람마다 다르고, 배치부서마다 다르겠지만. 그냥 궁금해서...
사람들이 대체로 본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땐 어려서 그랬나? ㅎㅎ)
밥사주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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