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것과 받아들인 것

한참 썼는데 날라가서, 근데 내가 뭐라 썼는지 기억이 잘 안나서 잠깐 좌절;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지극히 일부분이다. 아무리 시야가 넓다고 하더라도 내 옆 쪽은 선명하게 볼 수 없고 뒤에서 일어나는 일은 점쟁이도 알기가 어렵다. 그럼,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믿을만 한가? 무턱대고 의심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믿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나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경험한 일은 정확히 알 수 있는가? 친구나 가족과 싸웠을 때, 한 쪽이 사과를 한다면 금새 끝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싸움이 커진다. 그런데 왜 친한 사이에서 화를 내며 싸우게 될까? 같은 일을 경험하지만 둘이 받아들이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경험한 일도 그런데 하물며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보지도 못한, 아니, 가보지도 못했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정확히 판단할까. 물론 우리는 영상을 보았다. 하지만 그 영상은 한 집단에서 의도적으로 제작/편집한 것이다. (이 때의 의도가 나쁘다거나 왜곡했다는 뜻은 없다. 단지 의도가 들어감을 의미하고자 한다)

나도 처음엔 화가 났고,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는 그 영상에서 우리가 본 fact는
"스스로 여기에서 식사 문제라든지 자기 모든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들만 와 줬으면 좋겠다는.."이라는 대사의 발언이지
"씻을 물 달라, 잠 잘 곳 달라 하는 119 대원들 말고 스스로 여기에서 식사 문제라든지 자기 모든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들만 와 줬으면 좋겠다는.."이라는 발언이 아니다.
위의 밑줄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말을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사실 나는 처음 영상을 보고 저렇게 받아들였다.

그럼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앞에 119 구조대원들이 고생하는 장면이 나와서였다. 그럼 거기서 내가 본 fact는
'5일동안 샤워 한 번 밖에 못한 구조대원'이지 '샤워 꼬박꼬박하는 대사관 직원과 나란히 선 5일동안 샤워 한 번 밖에 못한 구조대원'이 아니다. 이 영상을 먼저 보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후반부 대사관 직원들 영상을 보고 새롭게 재구성되어 나의 분노가 커졌다.

우리는 아무도 자세한 맥락을 알지 못한다. 대사의 발언이 정말 119대원들을 보고 한 것인지, 혹은 연예인을 보고 한 것인지, 인터뷰 전에 있었다는 회의에서 나온 내용 때문인지 알지 못한다. (근데 보면 기자의 질문에도 119 대원들에 대한 단어는 들어가 있지도 않다. 다만 영상의 순서 때문에 우리가 119 대원과 연결시켜 생각할 뿐이다)
만약 똑같은 영상을 다른 순서와 나레이션으로 보도한다면 도미니카 대사관 직원들은 국민의 영웅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를 전달할 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쉽다. 또한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 흥분하고 비난하기도 쉽다. 일단 의심하자. 의심을 통해 신뢰가 파괴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의심은 신뢰를 키워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논의가 조금 산으로 갔는데, 급정리하는 글의 목적은; 직접 보지 못한 것에 대해 무비판적 수용이나 그로 인한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똥을 된장이라 속여 파는 이의 상황은 맥락 속에서만 파악되고 비판할 수 있다.


음.. 내 생각 직접 쓰지 않으면서 주장을 전개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

덧. 나름 오지에 속하는 남미의 페루에서 지낼 때, 산악 트레킹을 했는데 4일동안 못씻었다. 이유는 한 가지 물이 없어서. 산 속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마을에도(쿠스코) 저녁 10시 즈음이면 수도물이 끊긴다. 이유는 마찬가지, 물이 없어서 (페루는 물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어딘가에서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의 예는 자연재해가 없었던 페루였는데, 대규모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의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에콰도르 구조대가 샤워 시설을 어떻게 갖추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대표 구호팀장, 한비야 씨의 책들은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녀는 그 안에서 구호 현장의 참혹함. 구조대원의 열악한 조건들에 대해서 수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재난의 현장은 그녀의 글에서 극히 일부분 밖에 묘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이번 보도를 좀 더 객관적으로 (여러가지 눈에 보인 fact들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by jewel | 2010/01/29 18:58 | * not categorized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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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allout at 2010/01/29 19:38
님 여기서 이러시면 수구꼴통 소리 듣습니다
Commented by jewel at 2010/01/29 19:50
음. 맥락적으로 보자는 이야기가 왜 수구꼴통과 연결되는지요...;;
그리고 제 목소리를 '여기서' 안내면 어디서 내나요?
Commented by 멜키아 at 2010/01/30 00:22
모든 뉴스가 게이트키핑을 거쳐서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 보면서도 그러려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죠^^; 정보를 전해주는 매체가 많아진만큼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jewel at 2010/01/30 23:28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만큼 어느 정보가 참인지 알기가 어려워졌죠.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도 만약 TV만 존재했다면 기자의 말을 100% 믿고 지나쳤을텐데, 인터넷에 다양한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어요. 다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더 고민이 많아졌네요. 근데 구조대원 분 사진올리신 거 보니고 (좋은 의미에서)웃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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