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공부

3개의 수업을 듣고 있다. 그런데 3개의 수업 양상이 너무나도 달라서 학기가 반이 지난 이제서야 조금 수업 별 모드가 맞춰지는 것 같다. 물론 이건 그나마 방향성을 알았다는 뜻이고 아직 그에 대해 실천은 시작하지 못한 슬픔이 있다.

내가 여태까지 들었던 수업들은 죄다 과학(화학, 생명과학 등)이었고 모두 전공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교과서에 정리된 과거에서 최신까지 맞다고 알려진 이론들을 모두 습득하는 것인데, 기초부터 시작해서 이론의 개념을 파악하고 관련된 수식을 정리하면서 (유도하면 더 좋고) 주어진 문제에 어떠한 원리를 대입하여 해결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표다. 과학 공부는 개념의 이해가 어렵기는 하지만, 원서라고 해도 책을 읽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책은 책에 나온 그림들만 대략 이해하면 80%는 습득했다고 볼 수 있다. 옆에 영어로 줄줄 써 있는 내용은 해당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부연 설명인 거다. 그런데 인문학 책들은 그림이 거의 없고 말만 잔뜩 있다. 안그래도 어려운 영어를 그 말만 읽어서 이해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것이 나에게만 힘든 건 아닌 것 같다. 과학의 경우 논문이 하나 발표되면 간단한 '스킴'을 통해 이론이 전파된다. 모두가 해당 이론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인문학의 경우, 그 사람이 말한게 이거네 저거네 각각 다른 버전의 해석이 나오고, 나중에 가면 본인이 내가 말한건 그게 아니고 이거였네 라면서 얘기하기도 하고. 그나마 살아있으면 다행이지. 이미 고인이 된 철학자들의 이야기의 수많은 해석본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이래서 과학도에게 인문학은 뭔가 깔끔하지 않고 어렵게 느껴진다.

더불어 내가 여태까지 들었던 과학 외의 수업은 모두 '교양'이었다. 수업의 난이도에 관계 없이 학칙에 따라서 모두 '교양'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역사, 경영, 사회학 모두 나에게는 전공보다는 덜 까다로운 교양이라는 마인드가 알게 모르게 심어져 있었나보다.

요즘 듣는 수업은 과학사, 과학철학, 사회조직연구, 이렇게 세 가지인데, 나의 마인드가 아직도 변하질 못하여 자꾸 교양처럼 듣고 있다. 물론 수업 자체는 무지하게 재밌는데, 전공이라는 인식이 좀 안선다는 게 문제인거다. 좀 더 깊이 파고들어서 연구하면서 공부해야 하는데, 자꾸만 "에.. 뭐 내가 과학사 학파 만들 것도 아니고...", "내가 과학철학 새로 쓸 것도 아니고..." 하면서 자꾸 한 발 물러서는 것이다. 안그래도 얕은 지식에서 자꾸 물러나니까 결과물이 좋을리도 없다.
두번째 문제는 과학사나 과학철학 모두 인문학으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인데, 그 대상이 '과학'이다. 뉴턴과 관련된 여러가지 역사와 당시 문화, 다른 인물들을 보면서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책을 읽다 보면 자꾸 뉴턴역학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뉴턴역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_- 아, 이건 과학자들이 할 일이고 T-T 난 좀 과학 말고 그 주변을 봐야 하는데 말이지... 웃긴게 과학 공부할 때보다 지금이 더 과학이 재밌어 죽겠다는 거다. 아.. 고전역학의 의미가 이러한 것이었는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당시에 알았더라면 성적이 한계단 상승했을텐데... (과학하시는 분들 과학사와 함께 공부하면 과학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리라고 장담한다!)
세번째 문제는 아마도 과학과 인문학의 다른 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인문학에는 늘 여러 학파가 있고 각각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다. 역사만 해도, 과학 이론이나 지식에 초점을 맞춘 과학사가 있고, 과학이론과 과학자 그리고 그 주변 사회적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보는 과학사가 있다. 철학이야 말 할 것도 없이 늘 싸워대고 있다. 그나마 사회과학에 속하는 사회학의 경우 수많은 모델을 두고 그때그때 맞춰서 사용한다. 이는 내게 처음엔 굉장히 의아한 것이었다. 과학이 논쟁중이라고는 하나, 과학의 목표는 가장 합리적인 이론을 하나 고르는 것이다. 아직 골라지지 않은 이론이 경쟁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두 가지가 다 맞을 순 없다. 경쟁중인 이론이라도 과학자 개인의 입장으로는 좀 더 과학적으로 타당한 이론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인문학을 공부할 때 자꾸 어느 쪽이 맞는지 맞는 하나를 찾아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든다. 물론, 좀 더 내공이 쌓이면 나의 관점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에서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과학과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어 가끔 헷갈린다는 거다. 그런데 쓰다 보니 관점을 골라 서술한다는 방식에서 둘이 비슷한 것도 같고...

이러한 어려움 앞에서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조금 걱정스럽다.

요상하게도 전혀 다른 듯한 세 가지 수업을 듣다 보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나타난다. 그래서 더욱 재밌게 공부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내공이 적어서인지 요렇게 겹치는 부분을 분과를 넘어서서 적용하여 합리적으로 생각하기가 조금 어렵다. 가령, 최근 조직연구 수업에서 배운 "복잡계"의 경우, 불확실성이라는 점에서 양자역학과 맞닿아 있다. 이는 과학사에서는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변화하는 과학사의 과정을 보는 데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되지만 함유된 무언가를 찾아 볼 수 있는 듯한 늬앙스를 풍긴다. 또한 복잡계는 물리학에서 집중 연구하고 있지만 사회학에서도 사회 전체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 둘이 정확하 같은 개념으로 쓰이는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회학에서 복잡계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물리학의 수식들을 이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계 이론의 분과를 넘어선 '환원'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면 또 과학철학에서 이론의 환원이 무엇인지를 논하는데에도 뭔가 꺼리가 있어 보인다. 오! 오묘한 세계~
아직은 머리 속에서 수많은 노드들이 깜빡깜빡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슬슬 자리를 잡아 가기도 한다. 이제 이 노드들을 각각의 모드에 맞게 링크 시키는 것이 남은 학기의 과제일 것이다. 으흐흐흐 재밌다. >ㅁ<

(어디 공부하면서 돈 버는 그런 거 없나 T-T)




by jewel | 2009/10/19 18:30 | 원생의 일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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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멜키아 at 2009/10/20 01:13
이공계 쪽 공부를 하다가 인문학 쪽 공부로 넘어온 사람들은 늘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것 같네요^^;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전 과학을 교양으로 들었던 인문계 학생이라, 교재의 그림들이 전혀 이해가 안 가서 머리를 쥐어쌌던 기억이 더 많네요. 아하하하하...;ㅅ;

그나저나 쥬얼님처럼 공부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들 보면 늘 부러워요. 특히 영어 잘 하시는 분들...전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영어가 무섭네요. ㅜㅜ
Commented by jewel at 2009/10/21 12:42
아.. 대체 문과와 이과는 무엇이길래, 이리도 높은 벽이 있는 걸까요? 모든 일이나 공부가 하던 것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것이 어렵기 마련이지만, 문이과의 벽은 정말 험난하네요. 우리나라만 그런 것인지 외국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조금 늦게 시작하는데, 재밌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돈을 못버는 일이라 재밌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요 ^^; 영어 잘하는 건 항상 부럽습니다. 얼마 전엔, 왜 우린 이민 안갔냐, 혹은 나만이라도 조기유학을 보내지~ 라면서 엄마한테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요 (유치원생 같은 이야기죠) 그러고 보니 영어의 벽도 높네요 T-T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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