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6일
공감의 힘

1.
고등학교 때였다. 중간고사였는지 기말고사였는지, 아무튼 지구과학 시험을 보고 답을 확인하는데, 자신있게 답을 적은 문제가 틀린 거다. 문제를 다시 보니, 보기에 선생님이 가,나,다,라,마라고 자필로 써주셨는데 '다'를 흘려 쓰셔서 '라'로 보고 답을 적은 것이었다. 마침 내 짝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해당 문제를 틀렸다. 우리는 곧바로 대책회의(?)에 들어 갔고 친절하신 교련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과학교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 이 문제 좀 다시 봐주세요. 선생님이 글씨를 흘려 쓰시는 바람에 저희가 틀렸다구요~"
(우린 답을 모두 맞게 해달라고 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단단히 벼르고 들어갔더랬다)
그러자, 맥빠지는 선생님의 한마디
"아니, 그러냐! 그거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해 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우리는 벙찐 표정으로 허허 웃으며 교무실을 나왔다.
2.
몇 년 전에 yes24에서 그동안 샀던 책 목록을 확인해보고 있었다 (디게 할 일이 없었나보다;) 그러다가 기억에 전혀 없는 책이 하나 떡 들어가 있지 않나? '어? 난 이런 책을 본 기억이 없는데.. 이상타...' 바로 고객상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저.. 벌써 1년전에 주문했던 책인데요. 이제 와서 다시 살펴보니까 주문한 책이 안온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을 올리면서도, 업체에서 '정말 안받은거 맞냐? 어떻게 확인할 수 있냐? 1년 전 일을 왜 이제 얘기하냐? 거짓말은 아니냐?' 등등을 잔뜩 물어 볼거라고 긴장했더랬다. 그런데 왠걸 배송에 빠져서 미안하다고 바로 책을 보내주는 게 아닌가! 일주일도 안되어 해당 책을 받아보았다. 그런데, 받고 보니 조금 낯이 익다. 해당 책은 무려 1년 전에 받아서 내 책꽂이에 꽂혀있었던 것! 헉; 난 이후로 yes24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3.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에서 물건을 하나 샀는데, 계산하려는 찰나에 떨어뜨려서 병에 금이 가서 줄줄 센다. '헉, 내가 깼으니 물어야겠지, 천원이니까 괜찮아, 그래도 너무 아깝다 아직 개봉도 안했는데...' 점원도 난감해 하는 것 같았다.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내가 돈을 물어야 한다고 이해는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물어봤다.
"저.. 이거 제가 내야 되는거겠죠? T-T"
"고객님 실수잖아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이걸 저희가 팔 수는 없는거잖아요. 고객님이 책임 지셔야죠"
어머, 이 점원 어쩜 말을 해도 이렇게 밉게 하는지... 이성적으로는 상황이 납득가는데 내 감정이 너울을 뛰기 시작했다.
"제 실수인거 아는데, 어떻게 융통성 발휘를 해서 좀 안될까요?" (천원에 완전 구차;)
금이 간 부분을 스카치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인 후 비닐에 넣어 준 점원. 그러나 비닐 밖으로 줄줄 샌다-_-
"고객님이 떨어뜨리셨으니까 저희는 책임이 없구요. 이거 저희가 가진다고 다른 분께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 내 잘못이긴 한데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근데 내 잘못이라 막상 화도 못내겠고... 그 점원과 그런 얘기를 하는 사이, 계산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다른 점원에게 돈을 냈다. 그러고 그냥 줄줄 새는 그 병을 받아서 돌아서는데, 그 미운 점원 마지막 한큐를 날렸다
"돈은 주고 가셔야죠!" 어머, 나 돈 냈거등?-_-
바로 백화점 고객상담실로 갔고, 상담원에게 하소연을... 상담원이 대신 미안하다고 하는데 나도 같이 미안하고 그러면서 고마웠다. 조금은 구차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그녀가 어찌나 천사처럼 보이던지...
포스팅의 제목을 '말 한마디의 중요성'으로 했다가 '공감의 힘'으로 바꾸었다. 결국 '그 말 한마디'도 나와 공감할 때에 비로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우 화가 났을 때, 상대방이 공감해주면 화는 절로 풀어지게 되고 심지어는 별 일 아닌 거에 화가 났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반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상대방이 공감을 표시하지 않으면 상황이 급격이 나빠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공감'은 '이해'에서 온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에 '공감'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 by | 2009/07/06 01:06 | └ speak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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