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연구

STS를 접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기존에는 너무나도 당연시 여겼던 것들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겠는데, 앞서 올린 몇몇 포스트도 그러했지만 이번에 올리는 실험실 연구도 흥미롭다. 과학이 사회로부터 구성된다는 구성주의학자들의 연구 경향에 힙입어 과학자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인 실험실 연구 경향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 실험실 연구를 한 사람들이 구성주의학자라는 것은 아니다). 본 포스트는 지난 주 토요일 STS세미나 시간의 토론 주제였던 실험실 연구의 발제문이다.


Laboratory


과학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다름 아닌 실험실이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심지어 생각할 때에도 실험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때로는 실험실 사람들이 그들의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과학이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데, 그 과학을 행하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실험실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과학자들은 서로 의견을 나눌 때에 반드시 실험 데이터를 가운데에 둔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그들은 실험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한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과학자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것이 저널과 학회인데 여기에서도 그들은 실험 데이터로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그간 과학학 (과학사/과학철학/과학사회학)의 연구가 실험과 실험실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연구에 있어서 커다른 부분을 빠뜨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는 비교적 최근 대두되기 시작한 실험실 연구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자.


1.     실험으로의 복귀

과학사/과학철학 등의 흐름에서 과학적 이론의 형성은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과학적 실천(실험)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다. 실험은 이론에 의존적이며 이론을 잘 이해하는 것이 실험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생각 하에 이론에 우위를 두었다. 토마스 쿤도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대체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도 실제적인 과학 실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섀핀과 섀퍼는 [리바이어던과 진공펌프]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형식에 기초하여 실험적 삶의 형식을 논의하였는데, 실험이 이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독자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보일의 진공펌프 실험을 재현하였으나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과학적 실천이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고 불분명한 것임을 보였다.

1970년대에, 몇몇 STS학자들은 과학철학자나 과학사회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과학과 실제 과학자들과의 괴리가 있음을 눈치챘다. 이에 일부 이론 물리학자를 제외하고 과학자들이 대다수의 시간을 보내는 실험실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국면을 알아내려면 과학자들의 일상인 실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둘째로는 실험실의 과학자들은 마치 장인과도 같이 자신의 실험도구를 이용하여 실험을 정교하게 다룬다는 것이었다.


2.     보기 배우기

STS 학자들이 실험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것은, 실험실의 과학자들이 보는 정보를 이들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실험실 이러한 경향의 초기에 위치한 학자들은 과학자들의 실험실 연구를 인류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였는데, 라투르와 울가는 과학자 집단을 마치 이방인 부족으로 간주함으로써 이들을 관찰하였다. 여기서 이들은 실험자들만이 볼 수 있는 독특한 해석법이 있다는 발상을 한다. 실험자들은 실험 결과를 보기 위해 머리 속에 그려둔 결과를 해당 결과와 비교하며 필요한 정보만을 읽어 나갔다.

해킹에 의하면, 실험은 단순히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개입과 조작의 과정이 수반된다. 과학자들이 실험 결과를 관찰할 때에 있는 그대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더 잘 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해킹은 실험 실재론을 주장했는데, 실험의 과정에서 사물을 조작하는 정도에 의해서 사물이 존재하는 정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라투르가 TRF에 관해 이야기한, TRF는 그 이전에는 실재하지 않다가 과학자들이 TRF를 실험에 의해 밝혀 내었을 때 그것이 실재하기 시작했다라는 맥락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해킹은 실험이 이론에 의존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면서 실험은 이론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하였다. 그 예로 허셜의 적외선 발견을 제시한다. 허셜은 각기 다른 색의 필터를 사용하여 천문 관측을 하였는데, 어느 날 다른 색의 필터를 통과한 빛이 서로 다른 온도를 띄는 것을 발견하였고, 심지어 붉은색 외부의 영역에서도 열이 감지됨을 알 수 있었다. 허셜은 적외선에 대해 아무런 이론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실험을 통해서 열선 이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3.     실험실의 장인들

콜린스는 실험실 연구를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그 중 두 가지가 TEA-laser 에 관련된 연구에서 나타난 암묵지와 중력파 연구에서 나타난 실험자의 회귀이다.

미국과 영국의 실험실은 연구를 위해 TEA-laser를 설치하고자 했는데,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캐나다 국방부에서 발명한 TEA-laser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캐나다 국방부에서 받은 매뉴얼만으로는 TEA-laser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고, 어떤 실험실도 TEA-laser를 제작하지 못하였다. 후에 몇몇 실험실에서는 TEA-laser 제작에 성공하였는데, 이들은 직접 사람을 보내거나 전화 등으로 캐나다의 연구팀과 직접 연락을 취하였던 것이다. 콜린스에 의하면 이는 단순히 비밀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문서에 나타나지 않는 어떠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지식의 전달에 있어서 두 가지 모델을 비교하였는데, Algorithmic model은 문서 상에 나타난 공식적인 지식인 반면, Enculturational model은 사회성이 내재된 일종의 암묵적 지식이라는 것이다.

이후 콜린스는 중력파 논쟁에 관해 연구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파가 존재하는데 이의 측정이 쉽지 않아 계속적인 논쟁에 휘말려왔다. 그러던 중 웨버가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공표하며 자신이 제작한 중력파 탐지기를 이용한 실험결과를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웨버의 중력파 탐지 실험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재현되었으나 그들은 중력파의 탐지에 실패하였고 또 다시 중력파는 논쟁 속에 빠져들었다.

실험체계는 아직 답이 구해지지 않은 의문점에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새롭게 꾸며진다. 그러나 우리는 해답을 알지 못하기에 그 실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다. 이것을 실험자의 회귀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모든 실험에서 실험자의 회귀는 무한히 나타나야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콜린스는 어째서 실험자의 회귀가 무한히 반복되지 않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할 때에 다른 이들이 수행했던 실험을 반복하는 일은 피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실험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다른 방법의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얻어낸 답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조율(calibration)한다. 콜린스는 이 과정이 일종의 사회적 협상이라 주장하였다. 위의 중력파 논쟁에서도 웨버의 중력파 탐지에 대응하여 실험을 수행한 다른 학자들은 모두 웨버와 다른 방법으로 중력파를 탐지하였고 실패한 결과를 얻어내서 중력파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 협상이 실패한 것이다.


4.     계속되는 실험실 연구

사회구성주의에 의하면 실험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세계 곳곳에 위치한 실험실들은 어떻게 다른 이로부터 자신의 실험 결과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는가? 이에 갤리슨은 실험의 종료는 자의적인 변수의 조작이 아니라, 다른 기기를 사용했을 때에도 같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보편적 과학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닌 국소적(local) 과학이 탈국소화(delocalization)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갤리슨은 실험 뿐 아니라 기구에도 나름의 삶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기구를 처음 만든 사람이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래윅은 실험실의 공간적 위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남성 물리학자의 stereotype을 만들어내는 고에너지 물리학 실험실의 문화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녀는 실험실은 현대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문화 공간이라 보았다.

Forsythe는 인공지능 실험실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램 엔지니어들을 연구하였는데, 의사들, 환자들과 인공지능 엔지니어들이 함께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의 서열 관계에 주목했다. 연구를 주도하는 인공지능 엔지니어들이 의사보다도 높은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엔지니어들은 의사를 마치 정보를 뽑아내야 할 대상으로 보았으며 환자들의 지식은 모두 무시당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Kleinman은 생물학실험실 연구를 통해서 산업적 지원이 실험 결과에 미세하게 영향을 미침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면, 식물 병리학을 연구하던 박테리아 전문가는 특정 농업적 배경에서 화학 살균제가 뿌리가 썩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의 연구에 의하면 대학 실험실이 대학 내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도 실험실에서 수행하는 연구에 영향을 주었다.


5.     확장

STS 학자들의 실험실 연구는 단순히 과학 실험실에 관련한 연구 뿐만 아니라 이를 응용하여 다른 분야에도 접목시키고 있다. Merz와 Cetina는 실험실 연구를 이론 물리학 연구에 적용하였는데, 연구 중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치 실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탐사하고 짜깁고, 전문기술을 공유함으로써 해답을 구해낼 수 있었다. 또한 실험실 연구는 과학 뿐아니라 사회 과학 연구에도 접목시킬 수 있다. 몇 학자들이 실험실 연구를 건강 경제학, 경제학 모델링 연구, 거시경제학 등에 적용하였다. 실험실 연구는 새로운 세계로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으며 이로부터 또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참고문헌

1. Sergio Sismondo, An introduction to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Blackwell, 2004.
2. 홍성욱,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 기술, 문학과 지성사, 1999.
3. 이언 해킹 저/ 이상원 역, 표상하기와 개입하기, 한울, 2005.

by jewel | 2009/04/24 14:50 | └ speak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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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세엄마 at 2009/04/24 18:07
잘 보고 가요 'ㅅ'
Commented by jewel at 2009/04/27 23:51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altervox at 2009/04/26 21:45
실험을 요하는 학문 분야에 몸담기는 참 힘들죠. 저도 아버지께서 그런 분야에 몸담으셨거든요. 돈은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실험세계의 생리를 모르고 결과를 빨리 볼 수 없냐고 채근한다고 들었어요.
Commented by jewel at 2009/04/27 23:54
다른 분야에서도 항상 현장과 관리에는 어쩔 수 없는 틈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특히나 과학계가 좀 더 심하다고 느껴지는 건 단지 제가 그쪽에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허나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의 특성상 투자한 사람은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할 수 밖에 없으니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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