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22일
[과학혁명의 구조] 과학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과학 혁명의 구조] 토마스 쿤 저/ 김명자 역
스스로 과학자라고 생각하면서도 과학사/과학철학/과학개론서는 정말이지 난생처음 접했다. (과학콘서트와 같은 대중과학서적은 제외하고).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싶으나 나의 무지가 컸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300페이지에 못미치는 이 책을 읽는데 꼬박 3일이 걸렸으니... (읽은 것과 이해는 또 별개의 사항이다) 읽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각 챕터별로 내 나름대로 요약을 하였다.
chapter 1. 서론: 역사의 역할
과학은 그 시대를 풍미하는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며 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과학을 '정상과학'이라 한다. 정상과학을 수행하면서 이에 맞지 않는 새로운 발견은 통상 비과학적으로 치부되거나 오류로 오인되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오류가 아닌 새로운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발견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되는 새로운 이론의 태동은 이전 패러다임을 완전히 깨부술 수 있기 때문에 '혁명'으로 나타낼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즉 과학혁명은 한편으로는 이전 패러다임의 파괴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으로 볼 수 있다.
chapter 2. 정상과학에의 길
정상과학이란 동일 학문을 연구하는 집단이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집단을 이끌어 줄 수 있는 패러다임 하에서 수행되는 연구를 의미한다. 패러다임의 부재 속에서 각 과학자들은 하나의 연구 방향으로 결속되지 못한 채 개인적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과학 연구 활동을 진행한다. 이 때에 과학자 사회에 결속력을 심어주며 이들의 연구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이들의 공유된 이론(혹은 모델), 즉 패러다임이며, 패러다임 하에서 끊임 없이 추구되는 연구 활동을 정상과학이라 칭할 수 있다.
chapter3. 정상과학의 성격
패러다임은 전문가들 그룹이 몇 가지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다른 것들보다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때 성공적이라는 것은 단일 문제에 대해 완벽한 해석을 내놓는다던가 많은 문제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은 종속적 지배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인데, 패러다임 하에서 정상과학이 진행될 수 있으며 동시에 정상과학의 수행이 패러다임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chapter4. 수수께끼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패러다임은 정상과학에 일련의 규칙을 부여한다. 연구해야 할 개념적, 이론적, 방법론적인 일정한 목표를 부여하며 이로부터 정상과학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한다. 그러나 이 규칙 자체가 패러다임인 것은 아니나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다.
chapter 5. 패러다임의 우수성
패러다임의 공유가 규칙의 공유와 같은 것은 아니며 과학사학자는 사회의 패러다임끼리, 과학자 사회의 당대 연구 보고서들끼리도 비교해야 한다. 패러다임은 규칙의 개입 없이도 정상과학을 결정할 수 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전통과학의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과학교육이 교과서에 실린 정의만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풀이에 적용시킴으로서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패러다임이 모형이 되어 연구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패러다임이 공유된 규칙과 과정에 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패러다임이 전구성원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며 세분화된 전공에 따라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chapter 6. 이상현상과 과학적 발견의 출현
과학의 특정 이벤트가 있을 때 최초의 과학자와 그 시기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론나지 않았다. 가령, 어떤 물질의 발견이란 사건에 있어서 처음 그 물질을 접한 사람이 발견자인가 아니면 그 물질의 새로운 성질을 규명하고 정의한 사람이 발견자인가? 또한, 그 물질의 발견 시점에 있어서도, 처음 접했다고 기록했을 때인가 혹은 그 물질이 다른 물질들과 차별화되는 성질이 있음을 규명했을 때인가? 과학의 패러다임은 정상과학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며 패러다임 하의 과학을 발달시킴으로서 패러다임이 공고해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 자체가 정해진 틀을 부여함으로써 과학 활동에 제한을 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동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chapter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패러다임은 그 초기에는 이전의 이상현상을 모두 완벽히/영구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상과학이 진행됨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상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앞서 정상과학을 통해서 패러다임이 공고해진다는 말과 이율배반적일 수 있으나, 패러다임의 형성 초반의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공고히하는 데 큰 몫을 하나 깊게 연구가 진행되면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상현상)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상현상은 초반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나 점차 축적됨에 따라 이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 패러다임의 위상이 흔들리고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chapter 8. 위기에 대한 반응
기존 패러다임에 위기가 온다고 해서 바로 폐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존 패러다임을 강화하여 이상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상현상이 반복되며 그 수가 증가하여 위기가 고조되면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 가능했던 사실들까지 재검토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해진 가운데 기존 패러다임의 수정작업이 활발해지고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다. 위기가 없는 패러다임은 오히려 학문 자체를 도태시키기 쉬운데 과학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chapter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요성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사고 체계가 자리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혁명에 은유될 수 있다. 정치적 혁명과 마찬가지로 과학 혁명도 해당 집단의 동의 없이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패러다임 자체 뿐 아니라 과학자 사회 내에서의 효과적 설득 논증 기교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패러다임의 파괴 없이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할 수도 있다. 뉴턴역학과 아인슈타인 이론과 같이 아인슈타인 이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많은 부분에서 뉴턴역할을 고수하고 있으며 뉴턴역학은 여러 현상을 잘 설명해 내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자신이 없다)
chapter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패러다임이 전환이 과학연구 방법 및 추구 가치에의 변화도 가져오지만 과학자 사회의 세계관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물론 패러다임이 변한다고 해서 자연이나 세계 자체가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연구자의 시각이 변화함에 따라 연구자에게 하나의 현상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새로운 이론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 까지 많은 과정을 거치고 재확인되게 된다. 정상과학은 기존의 패러다임 하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입증하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기존의 패러다임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어 균열을 줌으로써 위기를 맞게 하기도 한다.
chapter 11. 혁명의 비가시성
과학혁명이 진행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기본적으로 과학교과서도 새로이 쓰여지게 된다. 매 과학혁명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교과서가 집필됨에 따라 과학교육이 이루어진다.
chapter 12. 혁명의 해결
패러다임은 하나만 존재하는 경우보다 경쟁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과연 이들 중 어느 것이 받아들여지는가? 정상과학은 패러다임 하에서 과학을 추구하는 방법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연구가 진행되는 까닭에 패러다임의 부재하에서는 정상과학이 더이상 진행될 수 없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 하에서 진행되는 정상과학은 같은 사실(현상)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해석을 갖게 하며 이는 둘의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 없다(공약불가능).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에 현상을 보던 인식이 변화함을 나타낸다. 주로 젊거나 기존 세계관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과학자가 패러다임의 전환이 빠르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 조차도 이전의 문제점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문제점도 야기한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 없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일종의 '자연 선택'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경쟁 패러다임에서 선택되는 것은 이성적이나 논리적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닌 과학자 개인의 취향인 것이다.
chapter 13. 혁명을 통한 진보
통상적으로 과학은 진리 탐구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며 항상 진보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과학혁명이 항상 진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나 이것은 비교가 불가능하기에 이전 패러다임보다 발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과학의 목적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나 '진리'의 의미는 매우 한정적이다. 과학의 발전은 뚜렷한 목표없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에 '진리'라는 것도 불분명하다. 이는 앞으로도 과학이 안고 가야할 과제이다.

- 쿤은 과학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개념을 도입하여 과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지식의 축적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쿤이 본 에세이에서 가장 많은 시간 설명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예로 들자면, 과거 천동설에서 여러가지 현상이 관측되어 좀 더 이치에 맞는 지동설이 나온 것이 아니라, 천동설이라는 패러다임 하에서 정상과학이 연구되다가 어느 순간 천동설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현상이 나타났고 이를 풀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인 지동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때 천동설과 지동설은 단순이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수평적 위치에 놓인 동등한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은 일종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기에, 하나의 현상을 천동설의 입장에서 설명한 것과 지동설의 입장에서 설명한 것을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같은 현상을 동일하게 인식하지 않음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에 과학혁명은 지식 축적을 뒤집어 엎는 '판'의 변화로 생각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의 발전은 언제 일어나며 과학자들이 월화수목금금금 해가며 수행하는 연구는 무가치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패러다임이 확립되면 이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작업인 정상과학의 활동이 수행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당 패러다임을 근거로 한 수많은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게 되며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후에는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의 해당 지식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각기 다른 패러다임 하의 정상과학의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패러다임을 선택할 것인가? 쿤은 이것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결과가 아니라 과학자 개인의 취향에 의해 선택된다고 했다. 이 부분이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과학자들과의 논쟁을 불러 일으킨 가장 큰 대목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딱히 결론이 없으며, 오히려 사회구성주의자로 하여금 이런 점 때문에 과학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해당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의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쿤은 사회구성주의자들의 이러한 해석이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쿤은 패러다임의 선택이 개인의 취향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쿤의 이론은 발표 당시 큰 충격을 던지며 논란을 가져왔고 직후 많은 과학사학자/과학철학자/사회구성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나 50년이 지난 지금엔 그 세력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쿤의 이론은 과학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짚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스스로 과학자라고 생각하면서도 과학사/과학철학/과학개론서는 정말이지 난생처음 접했다. (과학콘서트와 같은 대중과학서적은 제외하고).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싶으나 나의 무지가 컸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300페이지에 못미치는 이 책을 읽는데 꼬박 3일이 걸렸으니... (읽은 것과 이해는 또 별개의 사항이다) 읽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각 챕터별로 내 나름대로 요약을 하였다.
chapter 1. 서론: 역사의 역할
과학은 그 시대를 풍미하는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며 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과학을 '정상과학'이라 한다. 정상과학을 수행하면서 이에 맞지 않는 새로운 발견은 통상 비과학적으로 치부되거나 오류로 오인되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오류가 아닌 새로운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발견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되는 새로운 이론의 태동은 이전 패러다임을 완전히 깨부술 수 있기 때문에 '혁명'으로 나타낼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즉 과학혁명은 한편으로는 이전 패러다임의 파괴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으로 볼 수 있다.
chapter 2. 정상과학에의 길
정상과학이란 동일 학문을 연구하는 집단이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집단을 이끌어 줄 수 있는 패러다임 하에서 수행되는 연구를 의미한다. 패러다임의 부재 속에서 각 과학자들은 하나의 연구 방향으로 결속되지 못한 채 개인적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과학 연구 활동을 진행한다. 이 때에 과학자 사회에 결속력을 심어주며 이들의 연구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이들의 공유된 이론(혹은 모델), 즉 패러다임이며, 패러다임 하에서 끊임 없이 추구되는 연구 활동을 정상과학이라 칭할 수 있다.
chapter3. 정상과학의 성격
패러다임은 전문가들 그룹이 몇 가지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다른 것들보다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때 성공적이라는 것은 단일 문제에 대해 완벽한 해석을 내놓는다던가 많은 문제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은 종속적 지배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인데, 패러다임 하에서 정상과학이 진행될 수 있으며 동시에 정상과학의 수행이 패러다임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chapter4. 수수께끼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패러다임은 정상과학에 일련의 규칙을 부여한다. 연구해야 할 개념적, 이론적, 방법론적인 일정한 목표를 부여하며 이로부터 정상과학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한다. 그러나 이 규칙 자체가 패러다임인 것은 아니나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다.
chapter 5. 패러다임의 우수성
패러다임의 공유가 규칙의 공유와 같은 것은 아니며 과학사학자는 사회의 패러다임끼리, 과학자 사회의 당대 연구 보고서들끼리도 비교해야 한다. 패러다임은 규칙의 개입 없이도 정상과학을 결정할 수 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전통과학의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과학교육이 교과서에 실린 정의만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풀이에 적용시킴으로서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패러다임이 모형이 되어 연구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패러다임이 공유된 규칙과 과정에 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패러다임이 전구성원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며 세분화된 전공에 따라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chapter 6. 이상현상과 과학적 발견의 출현
과학의 특정 이벤트가 있을 때 최초의 과학자와 그 시기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론나지 않았다. 가령, 어떤 물질의 발견이란 사건에 있어서 처음 그 물질을 접한 사람이 발견자인가 아니면 그 물질의 새로운 성질을 규명하고 정의한 사람이 발견자인가? 또한, 그 물질의 발견 시점에 있어서도, 처음 접했다고 기록했을 때인가 혹은 그 물질이 다른 물질들과 차별화되는 성질이 있음을 규명했을 때인가? 과학의 패러다임은 정상과학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며 패러다임 하의 과학을 발달시킴으로서 패러다임이 공고해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 자체가 정해진 틀을 부여함으로써 과학 활동에 제한을 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동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chapter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패러다임은 그 초기에는 이전의 이상현상을 모두 완벽히/영구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상과학이 진행됨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상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앞서 정상과학을 통해서 패러다임이 공고해진다는 말과 이율배반적일 수 있으나, 패러다임의 형성 초반의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공고히하는 데 큰 몫을 하나 깊게 연구가 진행되면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상현상)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상현상은 초반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나 점차 축적됨에 따라 이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 패러다임의 위상이 흔들리고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chapter 8. 위기에 대한 반응
기존 패러다임에 위기가 온다고 해서 바로 폐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존 패러다임을 강화하여 이상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상현상이 반복되며 그 수가 증가하여 위기가 고조되면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 가능했던 사실들까지 재검토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해진 가운데 기존 패러다임의 수정작업이 활발해지고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다. 위기가 없는 패러다임은 오히려 학문 자체를 도태시키기 쉬운데 과학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chapter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요성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사고 체계가 자리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혁명에 은유될 수 있다. 정치적 혁명과 마찬가지로 과학 혁명도 해당 집단의 동의 없이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패러다임 자체 뿐 아니라 과학자 사회 내에서의 효과적 설득 논증 기교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패러다임의 파괴 없이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할 수도 있다. 뉴턴역학과 아인슈타인 이론과 같이 아인슈타인 이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많은 부분에서 뉴턴역할을 고수하고 있으며 뉴턴역학은 여러 현상을 잘 설명해 내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자신이 없다)
chapter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패러다임이 전환이 과학연구 방법 및 추구 가치에의 변화도 가져오지만 과학자 사회의 세계관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물론 패러다임이 변한다고 해서 자연이나 세계 자체가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연구자의 시각이 변화함에 따라 연구자에게 하나의 현상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새로운 이론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 까지 많은 과정을 거치고 재확인되게 된다. 정상과학은 기존의 패러다임 하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입증하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기존의 패러다임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어 균열을 줌으로써 위기를 맞게 하기도 한다.
chapter 11. 혁명의 비가시성
과학혁명이 진행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기본적으로 과학교과서도 새로이 쓰여지게 된다. 매 과학혁명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교과서가 집필됨에 따라 과학교육이 이루어진다.
chapter 12. 혁명의 해결
패러다임은 하나만 존재하는 경우보다 경쟁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과연 이들 중 어느 것이 받아들여지는가? 정상과학은 패러다임 하에서 과학을 추구하는 방법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연구가 진행되는 까닭에 패러다임의 부재하에서는 정상과학이 더이상 진행될 수 없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 하에서 진행되는 정상과학은 같은 사실(현상)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해석을 갖게 하며 이는 둘의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 없다(공약불가능).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에 현상을 보던 인식이 변화함을 나타낸다. 주로 젊거나 기존 세계관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과학자가 패러다임의 전환이 빠르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 조차도 이전의 문제점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문제점도 야기한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 없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일종의 '자연 선택'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경쟁 패러다임에서 선택되는 것은 이성적이나 논리적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닌 과학자 개인의 취향인 것이다.
chapter 13. 혁명을 통한 진보
통상적으로 과학은 진리 탐구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며 항상 진보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과학혁명이 항상 진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나 이것은 비교가 불가능하기에 이전 패러다임보다 발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과학의 목적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나 '진리'의 의미는 매우 한정적이다. 과학의 발전은 뚜렷한 목표없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에 '진리'라는 것도 불분명하다. 이는 앞으로도 과학이 안고 가야할 과제이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관이며 과학자에게 같은 사물을 달리 인식하게 하는 작용을 하기에 이들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 쿤은 과학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개념을 도입하여 과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지식의 축적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쿤이 본 에세이에서 가장 많은 시간 설명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예로 들자면, 과거 천동설에서 여러가지 현상이 관측되어 좀 더 이치에 맞는 지동설이 나온 것이 아니라, 천동설이라는 패러다임 하에서 정상과학이 연구되다가 어느 순간 천동설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현상이 나타났고 이를 풀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인 지동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때 천동설과 지동설은 단순이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수평적 위치에 놓인 동등한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은 일종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기에, 하나의 현상을 천동설의 입장에서 설명한 것과 지동설의 입장에서 설명한 것을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같은 현상을 동일하게 인식하지 않음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에 과학혁명은 지식 축적을 뒤집어 엎는 '판'의 변화로 생각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의 발전은 언제 일어나며 과학자들이 월화수목금금금 해가며 수행하는 연구는 무가치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패러다임이 확립되면 이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작업인 정상과학의 활동이 수행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당 패러다임을 근거로 한 수많은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게 되며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후에는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의 해당 지식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각기 다른 패러다임 하의 정상과학의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패러다임을 선택할 것인가? 쿤은 이것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결과가 아니라 과학자 개인의 취향에 의해 선택된다고 했다. 이 부분이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과학자들과의 논쟁을 불러 일으킨 가장 큰 대목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딱히 결론이 없으며, 오히려 사회구성주의자로 하여금 이런 점 때문에 과학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해당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의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쿤은 사회구성주의자들의 이러한 해석이 자신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쿤은 패러다임의 선택이 개인의 취향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쿤의 이론은 발표 당시 큰 충격을 던지며 논란을 가져왔고 직후 많은 과학사학자/과학철학자/사회구성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나 50년이 지난 지금엔 그 세력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쿤의 이론은 과학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짚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 by | 2009/03/22 01:25 | └ read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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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을 참 잘하신거 같아요. 이해가 쑥쑥 됩니다~ 잘 읽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