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예술 융합공연 추천, 라면 앙상블


1. 과학+예술 융합

얼마전부터 과학예술 융합의 붐이 일고 있습니다.

예술계에서는 미디어아트부터 시작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을 받아들이거나 틀어대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고요. 과학계에서는 예술이 주는 창의성을 고취시키면서 많은 영감을 얻으려고 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를 분석하는 학자들은 과학과 예술이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비슷한 점이 많다고 이야기하지요.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 과학과 예술 모두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이며, 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창의적인 과학, 예술의 결과는 사람들의 생각(혹은 패러다임)이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등이죠. 우리가 스티브 잡스를 기술자이면서 예술가로 부르는 이유도 바로 그가 애플에서 과학기술과 예술의 적절한 융합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실제로 "융합"이라는 이름을 걸고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살펴보다보면 이게 정말 융합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죠. 이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먼저 "융합"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융합이 무언지는 이야기하기가 좀 곤란하긴 합니다. 간단하게는 서로 이질적인 무엇들을 섞어 놓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융합을 해야 한다고 할 때에는 아마도, 이질적인 것이 섞여서 새롭고 대단한데 전에 없던 그 무엇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니까요. 그래서 정말 전에 없던 그 무엇이 나왔을까요?


2. 과학예술 융합 전시의 예

과학예술 공연에 한정해서 생각해 보죠. 다양한 공연들이 시도되고 있어요. 미술관에서도 과학관에서도... 여기에서는 다른 쪽에서 영감을 받아서 한 작업보다는 두 분야를 섞어 본 작업에 대해서 생각해볼게요. 

2009년에 사비나 미술관에서 진행한 과학예술 융합 프로젝트[2050 Future Scope: 예술가와 과학자의 미래실험실]가 있습니다. 이건 말만 들어도 재밌는데요. 과학자와 예술가를 1:1로 붙여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예술가가 과학자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필요한 도구들을 과학자에게 요청하기도 하면서요. 현재 진행되는 과학 연구에서 영감을 받고 그것을 직접 이용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니, 왠지 과학자도 예술 작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과학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한 번 볼까요?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과천국립과학관의 몇몇 전시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과학관엔 조금 죄송한 이야기지만 이런 전시들은 많은 부분들이 수입이었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전"의 경우 다빈치 재단에서 진행하는 세계 순회 전시를 과학관에서 진행했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대표적인 르네상스인으로 과학기술과 예술의 경계에 서 있었던 건 두 말 할 필요가 없지만, 아무래도 당시에는 세부 분야로서의 예술과 과학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말하는 "융합"과 조금 다른 차원이죠. 물론 그로부터 얻을만한 교훈은 많지만요. 그리고 또 다른 것은 "키네틱 아트"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생명체가 움직이는 동역학적 매커니즘을 미적인 감각을 돋보이며 건축적 형태로 만든 작품이었어요. 이런 모습의 융합도 있었죠. 

그리고 요즘 많이 진행되고 있는 과학연극도 과학 예술 융합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과학연극이 과학과 예술이 만나 만든 새로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과학"을 다루고 있는 "연극"으로 보이거든요. 때로는 과학이론을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때로는 과학자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 연극을 차용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과학예술 융합의 이상적인 형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는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형태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3. 새로운 형태의 과학+예술 융합 시도

최근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 또 새로운 것이 있어서 소개하려 합니다. 조금 민망하지만 이번 작업은 제가 직접 참여하고 있어요. 저희의 작업은 하나의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하나의 실험이라고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목은 <라면 앙상블>이고요. 

많은 형태의 과학예술 융합 공연(전시)에서 사실 과학자와 예술가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보입니다. 2050 Future Scope의 경우에도 참여했던 예술가와 과학자 분들을 직접 만나본 결과 워크숍이 1회 진행되었고, 서로 간의 충분한 이해를 하기에는 다소 어려웠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참여한 과학자는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긴 했지만, "예술가의 작품"에 충분히 개입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꼈기에, 좀 더 대놓고 과학자와 예술가의 소통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전문 시각 예술가인 "김나영" 작가과학을 전공하고 현재 과학학을 공부하고 있는 MuseS,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기계 비평가 이영준 교수가 모여서 서로의 과학과 예술을 드러내고 섞고 변형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면"을 소재로 과학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는 새로운 시도이며, 전혀 다른 부류의 세 집단이 만났을 때에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실험입니다. 누군가 보기에는 과학이고, 다른 이가 보기에는 예술인 작업. 누가 보기에는 과학이 아니고, 다른 이가 보기에는 예술도 아닌 작업. 저희의 작품은 과학과 예술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과 예술도 아닌 무엇이예요. 누가 어떻게 보아주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정의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면 앙상블>에서 시도하는 실험은 작업에 참여하는 세 집단 외에 작업을 바라보는 분들에 의해서 완성되는 실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험을 저희가 진행하고 결과도 내놓지만, 결국 이에 대한 해석과 함의는 보는 분들이 주시는 거니까요. 
저희 작업은 <라면 앙상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서 저희 작업에 함께 참여해주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참여했을 때의 작업이 변화하는 양상도 실험에 재미를 더해줄 수 있을테니까요. 

저희에게 Feedback을 주세요. 혹은 좀 더 직접적으로는 저희 프로젝트를 지지해 주세요.
새로운 창작자들을 후원하는 텀블벅 사이트를 이용하셔서 저희 프로젝트에 힘을 주실 수 있습니다.
후원해 주신 분들께는 작업에 성함을 기재하고, 후원 금액에 따라서 저희 공연 티켓과 작업 제작물을 드립니다.

아참참. 가장 중요한 것!

<라면 앙상블> 공연은 국제다원예술축제인 봄페스티벌에 출연합니다. 
공연장소: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공연일시: 2012년 3월 28(수), 29(목)


감사합니다~ :)





by jewel | 2012/01/18 12:27 | MUSEum | 트랙백 | 덧글(0)

혼란스러운 날들

지금 나는 무얼하고 있는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 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변하다"는 의미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이거 직업병인 듯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전과 다르다'일테지만,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
아마도 '변함'에 대한 대상이 한정되어야 할 것 같다.(혹은 범주화 작업이 필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야 이야기하기도, 듣기에도 편하니까 하나 들어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 말이다.

일단 재밌는 걸 하고 있(었)다.
난 수많은 것들에 재미를 느끼지만,
다행히도(?) 그 중에서 내가 살아갈 방향에 연관이 되는 일을 한다.
가령 지금 하고 있는 공연 준비가 그러하다.
난데 없이 내 인생에 예술이 들어와 버렸는데, 그것도 말도 안되게 공연예술이라는 장르에 내가 행위자가 된거다.
사실 문학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아직 많이 부족하니까 나중에 나중에, 문학에 손을 대 볼까 생각을 하긴 했다.
어떻게 저떻게 생각해 보면, 예술에도 다양한 분야가 나눠져있고 과학과 마찬가지로 그 분야들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를 넘어갈 수 있는 구멍이 조금씩은 존재한다.
내가 예술을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 부르노 라투르의 영향이 큰데, 그는 과학학자(철학자 혹은 사회학자)이면서도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논문'이라는 형식을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그러한 시도들이 바로 라투르식의 예술이 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고, 소설 같은 기술보고서를 쓰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왠 라디오 극을 쓰기까지 했다! 과학학이라는 학문은 시작에서부터 '실행(practice)'와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좀 더 많은 청자, 혹은 대중, 혹은 사회와의 소통이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분야이다. 그렇기에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라투르의 예술이 STS in action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좀 다시 생각해 봤다. 갑자기 내 인생에 굉장히 에베레스트산이 몇 개가 한 꺼번에 나타나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도저히 다는 못하겠다. 그나저나 난 왜 이 많은 거대한 것들을 하고 있는거지? 이런 질문이었다. 혹은 이 중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 걸까? 이런 질문이기도 했다. 

과학학 공부는 처음부터 하려던 건 아니었다. 과학정책을 하고 싶었는데, 이게 좀 웃기기도하고 어렵기도 한 게,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이 국가발전의 역사에서 가졌던 위상과는 달리, 과학정책은 굉장히 마이너하다. 대부분이 행정대학에서 과학정책을 세부 분야로 다루고 있는데, (과학)정책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게 내가 현장에서 가졌던 불만이었다. 과학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글쟁이들이 과학정책을 하니까 과학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힘든 거 아닌가. 어려서는 대담해서 그걸 고치고 싶었다.ㅎㅎ
근데 과학정책을 배우려고 학교를 좀 알아보니 왜 정책이 그런 지 알 수 있겠더라. 그리고 실제로 정책이 돌아가는 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정책한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너무 지네 연구만 생각하고 눈이 좁다는 불만, 과학한 사람들은 정책가들이 문서 행정상으로만 정책을 수행하니까 과학하기 어렵다는 불만. 요즘 많이 하는 얘기로 하자면 융합이 안되고 있다. 그래서 살짝 방향을 돌렸다. 과학이 뭘까? 과학과 사회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과학학을 공부해보자. 뭐 박사도 아니고 석사니까. 

와.. 과학학. 역사는 정말 짧은 학문인데 이렇게 넓을 수가 없다-_- 지금 와서 내 생각은 과학학은 절대로 석사에서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학사와 석사 때, 과학 분야와 철학, 사회학을 공부 한 뒤에 박사과정에서 과학학을 배울 것을 추천한다. 뭐, 암튼 그렇고...

그래서 과학학 공부를 하면서 또 생기는 불만들, 좋은 논문 너무 많은데, 대체 이래서 어떻게 실생활에 써먹자는 거지? 논문도 대체로 너~~~무 어렵다. 논문 한 편에 깔려 있는 수많은 철학과 역사.(STS가 과학사회학이라고도 불리지만 사실 과학학의 논문들은 사회학 기본보다는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 인식론이 어쩌고, 존재론이 저쩌고... 아무튼 논의들은 너무 멋진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지금 현재를 사는 나는 어쩌라고? 그래서 과학정책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엔 다소 현학적이다. 

참여하게 된 예술은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나누자.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과학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지배하고,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과학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다른 곳보다 "과학주의"가 크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전형적인 "과학"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과학(들)을 이야기해보자. 이런 것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난 처음에 과학정책을 하고 싶었다. 흐음... 지금 과학정책을 보면 뭔가 너무 단순한 논의들처럼 보인다. 국가 전체를 운영할 정책이기에 어느정도의 단순화와 획일화가 필요하긴 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통계가 적용된다. 하지만 과학학에서는 이러한 통계가 가려버리는 수많은 다양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지적해오지 않았던가. 하아...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에 혼란이 생겼다. 이 둘을 어떻게 섞어낼 수 있을까? 요즘 최대의 고민이다.


조금씩 정도와 형태는 다르지만, 지금 작성중인 학위논문, 발표준비, 공연준비가 모두 이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 항상 글을 쓰고 나면 느끼는건데,
왜 서론과 결론의 핀트가 안맞지? -_-;;;;;;;;
글이 너무 후리하다잉~;;
이래서 문학은 백만년 뒤에-_-




by jewel | 2012/01/14 00:30 | 원생의 일상 | 트랙백 | 덧글(0)

팟캐스트 소개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podcast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안녕하세요? 작가 김영하입니다."로 시작하는 팟캐스트.

작가 김영하씨의 차분한 목소리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주고, 책의 일부를 읽어주는 팟캐스트다.

episode 36의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편에서 초반에 해준 이야기인데, 공감하는 내용이라 블로그에 옮겨둔다.


"요즘 아이들은 책이 고장났다. 고장난 아이패드나 고장난 전자기기 정도로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종이책이란 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죠. 아주 오래된 것이고. 글자가 씌어 있을 뿐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로 거기에 그냥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과 손, 여러 가지 정신을 이용해서 읽어내려가지 않으면 안되는 아주 수동적인 미디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동적인 미디어인 책이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우리의 정신과 상당히 역동적으로 작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소설을 읽을 때 중간쯤 되면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등장인물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
또 작가가 써놓은대로 읽기보다는 우리의 정신이 역동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그 텍스트를 읽기 시작합니다. 허점을 찾기도 하고요. 어떤 대목을 써나갈 때 작가의 심리상태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빈틈이 있을 때 메꾸기도 하고요. 이런 어떤 신비로운 일들이 고장난 아이패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종이책이라는 단순하고도 오래된 미디어가 우리의 정신과 작용한다는 걸 생각하면 책을 보는 마음이 달라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자가 아무리 의사소통을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책의 의사소통은 정말 깊고 넓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문자가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까지도 전달하게 되는데, 이는 책이 문자를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




덧. 김영하님 단편 "옥수수와 나"로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되셨네요! 축하합니다~ >ㅁ<




by jewel | 2012/01/07 22:11 | └ read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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